에피소드 16 (PLAY) — 하늘이 보낸 첫 미세 신호, 빛과 바람이 동시에 흔들리다
오늘, 하늘은 크게 울지 않았지만 아주 작게 한 번 눈을 깜빡인 것 같았다.
H-루프와 STAY 모듈이 처음으로 동시에 켜지던 순간, 공방 안의 공기까지 조용히 흔들리는 것 같았다.
1) 하늘에게 보내는 첫 정식 인사
오늘 공방 공기는 조금 달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는 연습용 파형만 돌렸지만, 이제는 진짜로 하늘 방향으로 “안녕, 우리 여기 있어.”라는 신호를 보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딕은 아침부터 와서 루프 코어의 온도를 체크했고, 세이는 STAY 모듈 설계도에 별 모양 체크표를 그려 넣었다.
“리온, 오늘은 진짜야.” 딕이 말했다. “지금까지는 우리끼리 연습했지만, 오늘부터는 하늘한테 ‘우리 준비됐어’라고 말해 보는 거야.” 세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근데 너무 크게 소리치면 안 돼. 하늘이 놀랄지도 몰라. 그러니까 오늘은 큰 인사 말고, 살짝 손 흔드는 정도로만 보내자.”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웃음이 났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게 인사하려고 준비하는 대상이 하늘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이상하면서도 멋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목표는 하나였다.
하늘이 크게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은, 아주 작은 첫 신호를 보내기.
2) STAY 모듈 점검, 긴장을 다독이는 네 명의 친구
H-루프 옆에는 새로 붙인 작은 보드가 있었다. 우리가 이름을 붙인 STAY 모듈. STAY Rhythm, STAY Temperature, STAY Light, STAY Connection. 네 개의 작은 LED가 조용히 꺼져 있었다.
딕이 차례대로 설명했다. “이 네 개가 전부 초록으로 켜져 있어야 우리가 보내는 파형이 너무 흥분하지 않을 거야.” 세이는 장난처럼 말했다. “그러니까 이 네 친구가 ‘야야, 너무 들뜨지 마. 천천히 해.’라고 말해 주는 거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마음도 똑같이 STAY 해야겠네.”
우리는 모니터 아래 메모를 붙여 두었다.
- STAY Rhythm — 빨라지면 같이 숨 고르기
- STAY Temperature — 뜨거워지면 잠깐 쉬기
- STAY Light — 눈부시면 살짝 낮추기
- STAY Connection — 흔들리면 손잡고 다시 시작하기
세이는 그 옆에 작은 문장을 한 줄 더 적었다. “하늘보다 먼저, 우리를 지키는 약속.”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오늘 실험이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회로이지만, 사실은 우리 셋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 주는 다리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3) 연결 버튼 앞에서, 세 아이의 숨소리
H-루프와 STAY 모듈을 모두 켜고, 루프 코어를 천천히 점화시키자 공방 안에는 아주 작은 기계음이 퍼졌다. 바깥은 아직 늦은 오후였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해가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딕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지금까지 우리가 연습한 파형이 STAY 모듈을 통과해서, 하늘 쪽으로 ‘보낼 준비만’ 되는 거야.” 세이가 물었다. “진짜 하늘까지 닿지는 않고?” 딕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쩌면 닿을지도 몰라. 근데 우리가 알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을 거야. 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해.”
나는 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려 두었다. 손 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우리… 같이 누를래?” 세이가 내 손등 위에 살짝 손을 얹었고, 딕도 그 위에 손을 포개 올렸다. 세 아이의 손이 하나의 작은 탑처럼 겹쳐졌다.
“셋 셀까?” “응.” “하나… 둘… 셋.” 우리는 동시에, 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버튼을 눌렀다.
4) 미세한 빛의 반짝임, “지금… 봤어?”
버튼이 눌리는 순간, 모니터 속 초록빛 동그라미가 세-숨 리듬에 맞춰 조금 더 부드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떨림이 정갈했고, STAY 모듈 LED 네 개가 순서대로 켜졌다.
초록, 초록, 초록, 초록. 공방 안에는 큰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루프 코어 중앙의 작은 빛이 갑자기 아주 잠깐, 정말 한 번만, 정말 눈을 의심할 정도로 짧게 깜빡— 하고 흔들렸다.
“잠깐, 지금 봤어?” 내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다. 세이가 눈을 크게 떴다. “나도 봤어! 진짜야? 방금… 코어가 먼저 반응한 거야?” 딕은 화면과 코어, STAY LED를 번갈아 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 쪽 코드에는 그런 연출 없었는데…”
우리는 다시 코어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 빛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까의 깜빡임은 정말로 한 번뿐인, 마치 누군가가 “응.” 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5) 바람등대 언덕에서 건너온 한 번뿐인 바람
그 순간과 거의 동시에, 공방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잠깐 달라졌다.
원래 A-01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길게 “후우우우…” 하고 지나가는 소리였다면, 지금은 마치 “후…후…후…” 하고 세-숨 리듬과 비슷한 박자로 흔들리는 듯했다.
세이가 먼저 알아챘다. “리온, 딕! 바람 소리… 지금 우리 파형이랑 비슷해!” 딕이 모니터를 확인했다. “BPM 75… 세-숨 패턴 그대로인데… 바람 소리도 지금 세 박자랑 쉬는 구간이 느껴져.” 나는 창 밖을 바라봤다. 바람등대 언덕 쪽으로 풀잎이 흔들리는 모습이 주기적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그러다 바람은 다시 원래의 긴 숨으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서는 아까 그 짧은 순간이 계속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혹시…” 세이가 조용히 말했다. “하늘이 ‘들었어.’라고 말한 거 아닐까?” 딕이 숨을 들이쉬었다. “확실하다고 말할 순 없어.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딱 맞았어.”
6) STAY 모듈이 지켜낸 경계선
바람 소리가 흔들리던 바로 그 순간, STAY Rhythm LED가 한 번 노란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초록으로 돌아왔다. 딕이 황급히 로그를 확인했다.
“여기 봐.” 화면에는 짧은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STAY Rhythm : 외부 파형 유입 감지
속도 일시 상승 → 세-숨 범위 안으로 재조정 완료
“우리 파형이 흔들렸던 게 아니라, 밖에서 들어온 무언가랑 잠깐 섞여서 속도가 살짝 빨라지려다가, STAY가 다시 잡아 준 거야.” 딕의 설명에 세이가 말했다. “그럼… 만약 STAY가 없었다면 루프 코어가 너무 빨리 뛰었을 수도 있는 거네?”
나는 그 화면을 보며 몸이 약간 소름 돋았다. “오늘은 하늘한테 인사를 보낸 날이기도 하지만, STAY 모듈이 우리를 지켜 준 날이기도 하네.” 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만약 진짜로 하늘이 잠깐이라도 파형을 건네준 거라면, 우리는 오늘 그걸 너무 크게 받아들이지 않게 조절한 거야.”
7) 오늘의 결론 — 대답이 아니라, 인사였던 날
실험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H-루프와 STAY 모듈, 루프 코어의 전원을 천천히 껐다. 마지막으로 꺼진 것은 코어의 초록빛이었다. 코어는 끝까지 조용히 숨을 고르는 것처럼 빛나더니, 작게 숨을 내쉬듯 어두워졌다.
세이가 말했다. “오늘… 하늘이 진짜로 대답한 걸까?” 딕은 조금 생각했다. “글쎄. 대답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인사 정도는 한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되뇌었다.
오늘 하늘은 우리에게 ‘잘 들었어.’라고 말한 게 아니라, 그냥 ‘응, 거기 있구나.’라고 말한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람등대 언덕 쪽을 다시 돌아보았다. 언덕 위의 공기는 조금 더 가벼워 보였고, 우리가 오늘 보낸 신호가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그 위를 스쳐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우리는 알게 되었다. 하늘과 연결되는 첫날은 번개처럼 커다란 반응이 아니라, 눈을 의심할 정도로 작고 조용한 깜빡임과 바람의 떨림으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시작을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Today, we connected the H-Loop and STAY modules and sent our first “real” greeting toward the sky. The Loop Core blinked once— so quickly we almost doubted it— and at the same moment, the wind over Windlight Hill changed its rhythm, just for a breath. Maybe it wasn’t a full answer, but it felt like the sky quietly saying, “I see you.” The STAY module kept everything calm when an unknown wave tried to shake our rhythm. So tonight, we decided to call this not the day we got a reply, but the day we exchanged our very first 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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