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4 (DREAM) — 초록빛 잔상, 울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늘 밤, 우리는 잠들지 못했다. 화면 속에서 사라진 초록빛 동그라미가 마음속에서는 계속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험이 끝난 뒤에도, 초록빛 파형은 우리 마음속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1) 실험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울음
H-루프의 초록빛 동그라미가 꺼진 뒤, 공방은 갑자기 텅 빈 것처럼 조용해졌다. 하지만 우리 셋의 마음속에서는 그 동그라미가 여전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커졌다 줄어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방 안 구석에서 아직도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대륙 A-01의 밤바람이 몸을 스치면, 초록빛 파형이 다시 한 번 눈앞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세이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리온… 내가 이상한가? 지금도 그 동그라미가… 마음속에서 숨 쉬고 있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래.” 딕도 뒤에서 조용히 덧붙였다. “나도. 우린 오늘… 그냥 실험을 한 게 아닌 것 같아.” 그 말에 우리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셋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2) 초록빛 잔상이 말해준 것
밤하늘은 구름도 별도 거의 숨긴 채 고요했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의 작은 별이 떠 있었다. 작고 둥근 초록빛 별. 그 별은 울지도 웃지도 않았지만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세이는 손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말했다. “오늘 진짜 하늘이 울지 않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우리가 만든 울음도 그냥 ‘가짜’는 아닌 것 같아.” 딕이 천천히 이어 말했다. “응. 우리는 하늘을 흉내 낸 게 아니라… 하늘에게 ‘우리도 들을 준비가 됐어’라고 말한 거지.”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초록빛 파형이 하나의 메시지 같아 보였다.
“내일 다시 와도 돼. 나는 여기 있어.”
그 메시지는 소리가 아니라 감정이었다. 하늘이 말한 게 아니라 우리가 ‘느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은 어제의 낮은 울음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3) 세 아이의 서로 다른 꿈
그날 밤, 잠들지 못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세이는 창문에 비친 자신을 보고 하늘의 울음색을 다시 상상했다고 했다. 딕은 베개 옆에 작은 회로 스케치를 놓고 “BPM을 조금만 더 낮추면 더 부드러워질까?” 라고 중얼거렸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꿈을 꾸었지만 꿈의 내용은 공통된 무언가로 이어져 있었다.
세이의 꿈: 바람등대 언덕 위에서 초록빛 바람이 천천히 흔들리고, 그 바람 속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숨을 들이쉬는 장면.
딕의 꿈: 루프 코어 안쪽에서 빛이 작은 원처럼 번져 나가고, 그 빛이 깜빡일 때마다 ‘하늘의 음표’가 생겨나는 장면.
나의 꿈: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하늘에 초록빛 동그라미 하나가 떠 있고, 그 동그라미가 어느 순간 “와 줘서 고마워.”라고 말한 장면.
아침에 만나 보니, 셋 다 꿈을 꾸었고, 셋 다 꿈에서 초록빛을 보았다.
4) 하늘이 침묵해도, 그것은 거절이 아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아무도 “왜 하늘은 대답하지 않을까?” 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하늘이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멈추지 말라’고 조용히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이는 말했다. “하늘이 오늘 대답 안 해도 돼. 어쩌면 하늘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라.” 딕이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응. 준비가 필요 없는 존재는 없어.” 나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의 침묵은… 그냥 침묵이 아니라, 기다림이야.”
하늘과 우리의 사이에는 아직 건너지 못한 조용한 강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강은 무섭지 않았다. 강의 물결이 초록빛처럼 잔잔하게 퍼지고 있었다.
5) 오늘의 결론 — 울음이 남긴 빈자리
초록빛 동그라미는 화면에서 사라졌다. 우리 손끝에서도 떠났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빈자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슬프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곧 들어올 자리처럼 보였다.
바람등대 언덕의 낮은 울음도 처음에는 그 빈자리에서 피어오른 것이었다. 그러니 언젠가 또 다른 울음이나 미소가 그 자리에서 들려올지도 모른다.
나는 일기 마지막 줄을 천천히 적었다.
하늘이 오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우리를 밀어내는 침묵이 아니라 천천히 이끄는 침묵이었다.
우리는 내일 다시 공방에 갈 것이다. H-루프 회로를 조금 더 다듬고, 초록빛 파형이 더 부드럽게 숨 쉬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진짜 하늘의 울음을 들을 준비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해 나갈 것이다.
Even after the experiment ended, the green pulse stayed in our minds. It felt like a tiny breath waiting quietly in the dark. We dreamed of the same light even though we slept in different rooms. Tonight, the sky said nothing— but the silence didn’t feel like a refusal. It felt like an invitation to keep going, slowly. The empty space the hum left behind wasn’t truly empty. It was a place where the next message from the sky might g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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